'젊음'은 어떤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가?
각자가 정의하는 '젊음'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에게 젊음은 아주 이질적인 것의 충돌이 일어나는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꿈, 이상, 빛나는 것과 현실, 실제, 마주하고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질 때 '젊음'이 풍기는 천진성과 잔혹성이 잘 드러나는 듯하다.
그렇게 꿈과 현실이 서로를 무자비하게 침범하여 충돌하다 보면 어느새 여러 색이 마구 섞여있는 덩어리 그 자체가 젊음이라고 느껴지는데, 울리케 토이스너의 작품이 그 덩어리로 다가왔다.
젊음의 이미지를 돌아보게 해준 울리케 토이스너(Ulrike Theusner)의 개인전 ⟪Sweet Bird of Youth⟫에 대한 짧은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1 무대 위 배우를 그리는 관찰자로서의 작가

전시를 보고 난 후 작가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관찰자'였다.
모든 예술가는 관찰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생각하나, 토이스너는 극장의 객석에 앉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대 위 배우가 되어 벌이는 연극을 지켜보는 듯했다.
실제로 토이스너는 세계를 하나의 연극 무대로 설정하고, 사람들을 극 중 배우이자 앙상블로 상정한다고 한다.


이러한 무대적 연출은 그의 잉크 드로잉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해당 작품 속 인물과 대상은 어딘가 과장되고 설정을 부여받은 듯한 느낌을 준다.
대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은 비극의 한 장면을 포착한 듯하다.


연극적이고 음울한 분위기는 드라이포인트 작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끝말림이 생겨 선이 번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드라이포인트의 기법적 특징이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내는 데 한몫한다.


동시에 드라이포인트 작품은 18-19세기 낭만주의 회화를 떠올리게 했는데, 팜플렛 정보에 의하면 스페인 낭만주의 화가 고야의 <Los Caprichos> 판화 연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영감은 잉크 드로잉 시리즈로 이어진다고 적혀있는데,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잉크 드로잉 작품뿐만 아니라 토이스너 작품 전반의 연극적 면모에 깊은 영향을 미친 듯하다.


드라이포인트 작업 중에서도 초상화 작품은 이러한 무대적 연출의 기운이 많이 빠져있다. 물론 이는 피사체를 정확히 염두에 두는 '초상화'이기에 별다른 극적 요소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스냅샷과 같이 즉흥적인 포착을 그린 것 같으면서도, 작품 속 인물이 피사체가 되고 있음을 의식하는 듯 다분히 무대 위 배우의 연출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2 연출된 젊음이 보여주는 꿈과 현실

이렇듯 관찰자로서의 토이스너는 젊음을 마냥 밝고 희망차게 연출하지 않는다. 이는 1959년에 발표된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제목과 동일한 ⟪Sweet Bird of Youth⟫라는 전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
이 희곡은 성공한 배우를 꿈꾸던 주인공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성공과 젊음의 덧없음,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희망으로 부푼 꿈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 사이의 충돌은 테네시의 희곡과 동명인 드라이포인트 에칭 시리즈 <Sweet Bird of Youth>에서도 드러난다.
가까운 친구와 지인을 초상화로 그린 이 연작 속 인물은 무기력하고 모호한 표정을 보인다. 꿈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갈피를 잃은 젊음의 모습을 최대한 적나라하고 담백하게 그려낸 것이 아닐까?

또한, 희곡의 제목에서 파생된 키워드 중 하나인 젊음의 '덧없음'과 관련하여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작품은 <Fischgräten>였다. 작품명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생선뼈'인데, 제목 그대로 부패한 생선과 생선뼈 더미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삶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16~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를 연상케 했는데, 인간 삶의 유한함을 말하는 바니타스 형식을 빌려 젊음의 유한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지 추측해 본다.
'젊을 때는 자신이 젊은 줄 모르고 그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군다'는 말이 있듯, 방황과 젊음에 도취된 인간에게 고하는 경고 같기도 하다.
#3 꿈과 현실, 그 사이
널브러진 트럼프 카드와 먹고 남은 굴 껍데기, 술과 담배, 그리고 책.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선택했던 것들에 다가가 얼굴을 내미는 순간,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마련해놓은 꿈속 세상으로 도망치려고 해도, 여전히 현실은 우리를 끈질기게 붙잡는다.
언뜻 토이스너의 작품은 무력감, 덧없음, 허탈함과 같이 저항하고 싶은 '현실'의 감정에 무게를 실으려는 것 같지만, 젊음에 대한 결론을 온전히 '고통에 찬 현실' 정도로 확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허위를 걷어낸 젊음의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꿈과 현실 사이, 그 모호한 어딘가를 '젊음' 그 자체로 긍정하며 새롭게 정의하려는 듯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젊음은 무엇인지, 그 이미지는 어떠한지 토이스너의 작품을 보며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