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의 충돌, 그리고 젊음

by.강현규

문학,예술

꿈과 현실의 충돌, 그리고 젊음

울리케 토이스너 개인전 ⟪Sweet Bird of Youth⟫ 리뷰

by.강현규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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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어떤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가?

각자가 정의하는 '젊음'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에게 젊음은 아주 이질적인 것의 충돌이 일어나는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꿈, 이상, 빛나는 것과 현실, 실제, 마주하고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질 때 '젊음'이 풍기는 천진성과 잔혹성이 잘 드러나는 듯하다.

그렇게 꿈과 현실이 서로를 무자비하게 침범하여 충돌하다 보면 어느새 여러 색이 마구 섞여있는 덩어리 그 자체가 젊음이라고 느껴지는데, 울리케 토이스너의 작품이 그 덩어리로 다가왔다.

젊음의 이미지를 돌아보게 해준 울리케 토이스너(Ulrike Theusner)의 개인전 ⟪Sweet Bird of Youth⟫에 대한 짧은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2025.01.17 - 2025.03.08 📍파운드리 서울
2025.01.17 - 2025.03.08 📍파운드리 서울

 


 

#1 무대 위 배우를 그리는 관찰자로서의 작가

 

1982년생 독일 작가 울리케 토이스너(Ulrike Theusner) © Ulrike Theusner
1982년생 독일 작가 울리케 토이스너(Ulrike Theusner) © Ulrike Theusner

전시를 보고 난 후 작가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관찰자'였다.

모든 예술가는 관찰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생각하나, 토이스너는 극장의 객석에 앉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대 위 배우가 되어 벌이는 연극을 지켜보는 듯했다.

실제로 토이스너는 세계를 하나의 연극 무대로 설정하고, 사람들을 극 중 배우이자 앙상블로 상정한다고 한다.

 

&lt;Diplomacy&gt;, 2022&nbsp;© Ulrike Theusner<br>
&lt;Diplomacy&gt;, 2022&nbsp;© Ulrike Theusner<br>
&lt;Das Duell&gt;, 2024 © Ulrike Theusner
&lt;Das Duell&gt;, 2024 © Ulrike Theusner

이러한 무대적 연출은 그의 잉크 드로잉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해당 작품 속 인물과 대상은 어딘가 과장되고 설정을 부여받은 듯한 느낌을 준다.

대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은 비극의 한 장면을 포착한 듯하다.

 

&lt;Crossing the Border&gt;, 2022/2024&nbsp;© Ulrike Theusner
&lt;Crossing the Border&gt;, 2022/2024&nbsp;© Ulrike Theusner
&lt;The World Is a Mean Place&gt;, 2022/2024 © Ulrike Theusner
&lt;The World Is a Mean Place&gt;, 2022/2024 © Ulrike Theusner

연극적이고 음울한 분위기는 드라이포인트 작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끝말림이 생겨 선이 번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드라이포인트의 기법적 특징이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내는 데 한몫한다.

 

Goya, &lt;The sleep of reason produces monsters&gt; (No. 43), 1799 © metmuseum&nbsp;
Goya, &lt;The sleep of reason produces monsters&gt; (No. 43), 1799 © metmuseum&nbsp;
Goya, &lt;To rise and to fall&gt; (No. 56), 1799 © metmuseum&nbsp;
Goya, &lt;To rise and to fall&gt; (No. 56), 1799 © metmuseum&nbsp;

동시에 드라이포인트 작품은 18-19세기 낭만주의 회화를 떠올리게 했는데, 팜플렛 정보에 의하면 스페인 낭만주의 화가 고야의 <Los Caprichos> 판화 연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영감은 잉크 드로잉 시리즈로 이어진다고 적혀있는데,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잉크 드로잉 작품뿐만 아니라 토이스너 작품 전반의 연극적 면모에 깊은 영향을 미친 듯하다.

 

&lt;Alma&gt;, 2021/2024&nbsp;© Ulrike Theusner
&lt;Alma&gt;, 2021/2024&nbsp;© Ulrike Theusner
&lt;A Happy Moment&gt;, 2020/2024 © Ulrike Theusner
&lt;A Happy Moment&gt;, 2020/2024 © Ulrike Theusner

드라이포인트 작업 중에서도 초상화 작품은 이러한 무대적 연출의 기운이 많이 빠져있다. 물론 이는 피사체를 정확히 염두에 두는 '초상화'이기에 별다른 극적 요소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스냅샷과 같이 즉흥적인 포착을 그린 것 같으면서도, 작품 속 인물이 피사체가 되고 있음을 의식하는 듯 다분히 무대 위 배우의 연출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2 연출된 젊음이 보여주는 꿈과 현실

이렇듯 관찰자로서의 토이스너는 젊음을 마냥 밝고 희망차게 연출하지 않는다. 이는 1959년에 발표된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제목과 동일한 ⟪Sweet Bird of Youth⟫라는 전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

이 희곡은 성공한 배우를 꿈꾸던 주인공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성공과 젊음의 덧없음,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lt;Eires (Adrian)&gt;, 2018&nbsp;© Ulrike Theusner
&lt;Eires (Adrian)&gt;, 2018&nbsp;© Ulrike Theusner
&lt;Venus&gt;, 2018 © Ulrike Theusner
&lt;Venus&gt;, 2018 © Ulrike Theusner

희망으로 부푼 꿈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 사이의 충돌은 테네시의 희곡과 동명인 드라이포인트 에칭 시리즈 <Sweet Bird of Youth>에서도 드러난다.

가까운 친구와 지인을 초상화로 그린 이 연작 속 인물은 무기력하고 모호한 표정을 보인다. 꿈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갈피를 잃은 젊음의 모습을 최대한 적나라하고 담백하게 그려낸 것이 아닐까?

 

&lt;Fischgräten&gt;, 2022 © Ulrike Theusner
&lt;Fischgräten&gt;, 2022 © Ulrike Theusner

또한, 희곡의 제목에서 파생된 키워드 중 하나인 젊음의 '덧없음'과 관련하여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작품은 <Fischgräten>였다. 작품명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생선뼈'인데, 제목 그대로 부패한 생선과 생선뼈 더미를 보여준다. 

 

Hans Holbein the Younger, &lt;The Ambassadors&gt;, 1533 © wikipedia&nbsp;
Hans Holbein the Younger, &lt;The Ambassadors&gt;, 1533 © wikipedia&nbsp;
&nbsp;Pieter Clasez, &lt;Still life with Herring, Wind and Bread&gt;, 1647 © artvee
&nbsp;Pieter Clasez, &lt;Still life with Herring, Wind and Bread&gt;, 1647 © artvee

이 작품은 삶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16~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를 연상케 했는데, 인간 삶의 유한함을 말하는 바니타스 형식을 빌려 젊음의 유한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지 추측해 본다.

'젊을 때는 자신이 젊은 줄 모르고 그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군다'는 말이 있듯, 방황과 젊음에 도취된 인간에게 고하는 경고 같기도 하다.

 

 

#3 꿈과 현실, 그 사이

&lt;Bar&gt;, 2023
&lt;Bar&gt;, 2023
&lt;Bar&gt;, 2023
&lt;Bar&gt;, 2023

널브러진 트럼프 카드와 먹고 남은 굴 껍데기, 술과 담배, 그리고 책.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선택했던 것들에 다가가 얼굴을 내미는 순간,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마련해놓은 꿈속 세상으로 도망치려고 해도, 여전히 현실은 우리를 끈질기게 붙잡는다.

 

&lt;Remembrance&gt;, 2024
&lt;Remembrance&gt;, 2024

언뜻 토이스너의 작품은 무력감, 덧없음, 허탈함과 같이 저항하고 싶은 '현실'의 감정에 무게를 실으려는 것 같지만, 젊음에 대한 결론을 온전히 '고통에 찬 현실' 정도로 확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허위를 걷어낸 젊음의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꿈과 현실 사이, 그 모호한 어딘가를 '젊음' 그 자체로 긍정하며 새롭게 정의하려는 듯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젊음은 무엇인지, 그 이미지는 어떠한지 토이스너의 작품을 보며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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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로필

강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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